초보 농부의 스마트팜 실전기 – 실패와 시행착오 기록
나는 원래 IT 회사에서 일하던 직장인이었다. 업무 강도는 세지 않았지만, 매일 반복되는 회의와 문서 작업 속에서 내가 만든 결과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체감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우연히 유튜브에서 스마트팜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고,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농업’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단순한 농사보다 훨씬 구조화된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느꼈고, 내 전공인 정보처리 지식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고, 스마트팜 창업을 준비하게 되었다.
2023년 봄, 충청북도에 위치한 한 농지에 200평 규모의 하우스를 임대했다. 초기 자금은 약 6,000만 원이었고, 대부분이 온실 공사와 스마트 제어 시스템 설치에 들어갔다. 내가 선택한 작물은 로메인 상추였다. 생육 주기가 짧고, 상대적으로 병해충에 강하며, 자동 관수 및 온습도 조절로 키우기에 적합하다는 전문가의 조언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농업이 이렇게까지 섬세한 조정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생각보다 복잡한 변수들이 많았고, 시스템이 자동으로 다 해결해줄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현실에서 곧 무너졌다.
스마트 시스템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설비가 설치된 뒤, 나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온도, 습도, 이산화탄소 농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외출 중에도 원격으로 온실의 상황을 점검할 수 있고, 자동 환기 시스템이 일정 수치에 도달하면 스스로 작동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5월 중순 갑작스러운 일교차로 인해 내부 온도가 급격히 올라갔고, 수분이 부족해진 상추 잎이 말라붙기 시작했다. 센서가 온도를 감지하고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이유는, 내가 설정한 자동화 조건이 현실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세팅하느냐'에 있었던 것이다.
자동화 시스템은 잘 설계된 조건 아래에서만 효과적이다. 나는 ‘기본값’으로 설정된 제어 기준이 일반적인 작물에 적합하리라 생각했지만, 로메인 상추는 야간 온도가 낮을수록 생육 속도가 빨라지는 특성이 있었다. 결국 센서가 낮에 뜨거운 공기를 차단하지 못했고, 새벽에는 온도를 너무 낮추어 생장 장애가 생겼다. 기술적 장비에 의존하면 농사가 쉬워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세밀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결국 ‘자동화는 농사의 모든 걸 해결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직접 이해하고 제어해야 하는 ‘보조 수단’에 불과했다.
데이터는 쌓이지만, 해석이 없으면 무의미한 스마트
스마트팜의 장점은 분명했다. 내가 수동으로 하지 않아도 매일의 생육 환경 데이터가 자동으로 기록되었고, 이를 통해 계절, 날씨, 외부 기온 변화에 따른 작물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단계였다.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쌓이기만 하는 자료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예를 들어, 특정 시기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평소보다 높게 유지되면서 잎의 성장이 느려졌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지 못했다. 결국 나는 데이터 분석보다 '데이터를 관찰하는 감각'이 먼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나는 매일 3회 이상 온실에 직접 들어가 작물을 눈으로 관찰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패턴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단순히 수치를 기록하는 것뿐 아니라, 상추 잎의 빛깔, 줄기의 탄성, 흙의 수분감 등을 동시에 비교하면서 센서 수치와 실제 생육 상태 간의 관계를 직접 확인했다. 데이터를 통해 상추의 생육 속도가 느려진 원인을 파악한 이후,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춰주는 배기 설정을 추가했고, 며칠 뒤부터 작물은 다시 정상적인 성장 속도를 회복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데이터 기반 농업’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체감했다. 데이터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작물의 언어였고, 그것을 해석할 수 있어야만 진짜 스마트한 농업이 가능했다.
실패의 반복 속에서 만들어진 나만의 스마트팜 농사 감각
스마트팜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처음과는 다른 방식으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초기에는 기술적 요소를 최우선에 두었지만, 지금은 작물의 특성과 환경 사이의 균형을 먼저 고려한다. 기술은 이를 보완하는 수단일 뿐이다. 나는 하루에 최소 한 번은 온실을 직접 방문해 작물의 상태를 육안으로 확인하고, 주간 단위로 수치 변화와 생육 속도 간의 관계를 정리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 노트’를 만들어 패턴을 분석하고, 특정 상황에서 어떤 설정을 해야 할지 나만의 기준을 정립해나가고 있다.
지금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기후 변화나 장비 오류는 발생하고, 고객 납품 일정에 맞춰 수확량을 조절하는 일도 어렵다. 하지만 이제 나는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패는 반복되었지만, 그 실패 속에서 ‘농사 감각’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스마트팜은 단순한 시스템이 아니다. 그것은 데이터를 해석하고, 환경을 조절하며, 작물을 이해하는 사람의 역량을 전제로 작동하는 구조다. 결국 스마트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센서도, 자동화 프로그램도 아닌 ‘운영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는 경험으로 배웠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다. 스마트팜은 단순한 농업의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도전할 만한 가장 현실적인 기술 창업의 형태라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는 수치와 감각, 기술과 사람이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농업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그 길의 초입에 서 있는 초보 농부지만, 분명 확신을 가지고 있다. 실패는 성장의 가장 값진 기록이며, 그 기록이야말로 나의 진짜 자산이다.